선교사 묘역하면 서울 양화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광주 양림동 호남 신학교 안에 선교사 묘역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미국 남장로교가 전라 충정지역 선교 담당으로
유진벨 선교사를 전남 선교 개척자로 선정
광주광역시 양림산 일대는, 1900년대 초까지, 광주시내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내다 버리던, 공동묘지 풍장터.
1904년, 선교사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양림산은, 호남 지역 선교의 중심지.
지금 이 자리에는, 호남신학교가 있다.
이곳에, 선교사 묘원이 만들어진 것은, 1909년 오웬 선교사가 병으로 순교하여 이곳에 매장하면서부터이다.
원래는 오웬, 유진벨, 서서평 등 선교사와 그 가족 22기의 묘만 있었지만, 2010년 23기의 묘비가 추가로 세워졌다.
호남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숨져, 양화진과 전주에 안장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묘비를 동일한 모양과 크기로 재현해,
추가로 세워서, 지금은 총 45기의 묘비가 있다.
돌비마다 고귀한 자기 생명을 바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사연이 새겨져 있다.
그중 1913년 4월 26일과 27일 하루 차이로, 숨져 나란히 누워있는 어린 남매의 묘비는 보는 이의 애틋함을 더해 준다.
( 출처http://blog.daum.net/sunghwa/15853141)
유진벨 선교사 (1868- 1925)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선교사는 남장로교회의 제2진 선교사로
오웬(A. D. Owen)선교사와 함께 1895년 4월 9일 내한.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배유지".
전라남도지역에서 개척하도록 위임받아 어학선생 변창연과 함께 나주로 가서 일하기로 하고
1896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나주지역을 답사하기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거주지도 얻지 못하고 나주지부 설치에 실패함.
그는 목포로 옮겨가 목포선교부를 설립하고 교회개척과 교육활동에 종사.
그의 노력으로 목포 정명학교와 영흥학교가 설립.
서울에서 자동차를 몰고 광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한국에서 당하는 첫 시련이었다.
목포지부를 개척한 그는 1904년 광주로 옮김.
김윤수 집사를 보내 광주에 거처를 확보하게 하고 주택이 거의 완성되자
1904년 12월 19일 유진 벨은 오웬과 함께 광주로 이주.
그해 12월 25일 성탄절에는 유진 벨과 오웬가족, 변창연,
그리고 요리사들이 주민을 초청하여 40여명이 함께 예배드렸는데,
이것이 광주지방 최초의 교회인 현 광주제일교회의 시작.
유진 벨은 이곳 광주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과 의료활동, 그리고 교회개척에 힘씀.
그는 한국에서 30년간 일하고 1925년 9월 28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그의 유해는 광주양림동 뒷산에 안장됨.
(출처http://blog.daum.net/sunghwa/15853141)
유진벨의 생애와 선교 여행여정을 잘 알아 볼수 있게 전시 되었다.
양림의 선교 투어
1. 선교 기념비
2. 유진벨 선교기념관
3. 선교사 묘역
4. 윌슨 선교사 사택
5. 수피아여학교
6. 커티스메모리알홀
7. 오웬기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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